처음엔 주는 줄도 모르고 주었고, 나중엔 바라고 주었고, 지금은 어느새 물길이 잡혀 그저 그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한 쪽으로만 간다는 것을.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점점 커져 시내를 이루고, 계곡을 지나서, 강을 만나, 바다에 이르도록 내내 한 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그 물줄기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시내는 이루었을까?
계곡을 지났을까?
강을 만났을까?
바다에 닿았을까?
아니, 아니다.
그 물줄기는 아직도 깊은 땅 속에 있다.
아직 한 발자국 만큼도 흐르지 못했으면서 마치 바다에 닿은듯 힘겨워 하고 있다.
사람은 얼마나 어리섞은지.
아니, 나는 얼마나 어리섞은지.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없다.
다 모아봐야 아직 한 모금도 안 될텐데 그것으로 바다를 채운줄 알고 있다.
누군가의 목마른 가슴을, 아니 메마른 입술을 적셔줄 정도도 되지 않으면서 벌써 바다가 되어 온 세상을 품에 안은듯 하고 있다.
아직 아직 멀었다.
이 세상에 없던 것을 태어나게 한 기적같은 일을 이루었으면서 그것을 마치 매일 일어나는 일처럼 성급하게 굴다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것. 내 안에만 있는것.
이제 한 모금이니 곧 두 모금이 될 테지만 어느새 모여 한 사람의 가슴을 적셔줄 정도가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그 큰 가슴을 적시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할까?
계속 가다 보면 시내를 이루고, 계곡을 지나서, 강을 만나, 바다에 이를 수 있겠지.
해, 달, 별, 바람, 하늘, 구름, 나무, 돌, 꽃 친구들도 많이 만나겠지.
내 눈에 바다가 있으니 길을 잃지는 않겠지.
바다에 닿으면, 내 눈물과 같은 그 물에 녹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내가 태어난 그 곳으로.
한방울의 물로 태어난 그 나무 밑으로.
긴 여행 잘 다녀왔다고, 기대어 잠시 눈 감고 일어나면 나무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늘을 향해 매일 조금씩 자라는 나무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해, 달, 별, 바람, 하늘, 구름, 나무, 돌, 꽃 친구들을 벗 삼아 밤에도, 낮에도 자라는 나무.
그대에게 닿도록 쉼 없이 자라 그대의 가슴에 깊이 뿌리 내릴 나무.
해 저물어 노을이 져도 그대, 슬퍼하지 않기
그대 가슴에 담긴 그것은 언제나 그대로 있을테니
그대가 내 가슴에 있는 것처럼, 언제나 그대로 있을테니
바람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면 내가 웃는 것이니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를 보고 웃어주기
잘 살고 있다고 우리 서로 손 흔들어주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639페이지 까지 찍혀 있다.
꽤 인기가 있었는지 2007년 1월 31일 초판 1쇄가 발행되었고 같은 해 2월 22일 14쇄가 발행되었다.
초판 1쇄의 경우 보통 5,000부에서 10,000부 정도를 찍지만 2쇄 부터는 5만부 이상 찍기도 하니 한달도 안되어 14쇄라면 엄청난 양이 출간된 것이다.
아직 다 읽은 것이 아니니 책에 대한 리뷰는 뒤로 미루고 초반에 내 시선을 잡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것만 잠깐 다루려 한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에 공명정대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어떤 사람을 기다렸다고 해야할지, 찾아다녔다고 해야할지, 만날 수 있기를 바래왔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내가 묻는 것에 대해 어떤 답이든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묻는 것이 항상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테니 그 답 역시 정답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질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자신의 생각을 말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자연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필요에 의해 바꾸거나, 없애거나, 파괴해 버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싸그리 모아서 화성으로, 아니 이름없는 행성으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행성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경이로운 감탄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자연, 그 안에서 비로소 진정한 평화로움을 느끼는 사람.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
사람에 대해, 동물에 대해, 식물에 대해, 모든 생물에 대해 측은해 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
행동하는 사람.
옳은 것을 옳다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 외면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
잊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타인으로 부터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무엇 보다 그 자신을 잊지 않는 사람.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특히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어떤 분야의 책이든 가리지 않고 읽으며 그 지식을 나눠줌에 인색하지 않는 사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가슴을 울리는 음악에 눈물 짓기도 하고, 그 흥에 취하기도 하고, 자신이 느끼는 그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고개 끄덕일 수 있으면 된다.
글을 쓰는 사람.
'내가 한가지 할 줄 모르는게 있어. 바로 글 쓰는 거야. 그런데 네가 원하니까 그냥 써볼게. ...할 말이 없네. 이렇게 쓰면 너한테 혼날지 모르지만 생각나는게 이것 하나밖에 없어. 'I Love You!' 화내지 마!'
길을 걷는 사람.
서로의 호흡에 맞춰 나란히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 어깨를 대고, 손을 잡고, 팔장을 끼고, 어깨를 감싸고, 허리를 안고, 귓속말을 하고, 다시 허리를 안고, 어깨를 감싸고, 팔장을 끼고, 손을 잡고, 어깨를 대고...
웃는 사람.
나를 보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웃으며 '어서 와!' 말해주는 사람.
눈을 감고 편히 쉴 수 있는 사람.
말없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언제까지고 쉴 수 있는 사람.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그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것임!
...
내가 만나고 싶은 이 사람은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만나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착각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혼자 살지 않는 한 혹은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아닌 이상 절대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철학이 깊어지면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이 그것들의 수혜자라 생각하고 자신이 그것들을 이용하고 움직인다고 착각하고 있다. 어느 순간 자신 역시 그 절대 구성원이 되버렸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그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받은 교육, 또는 그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지식, 경험이 정말 그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데서 나온다. 그것들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이 진정 그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인지 반문해보라.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심지어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물에 대한 취향도 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라는 자아가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인간으로 셋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엄청난 가능성에서 만들어진 단 하나의 모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감히 꿈이나 꿔 볼 일인가 말이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닌데 누가 그라서 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나는 너무도 많은 생각으로 혼란스러운 내 이성과 감정을 컨트롤 하기 힘들어 중용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동경하게 되었다. 공명정대, 중용, 평상심 이런 것을 내 안에 갖고 싶었다. 너무도 원했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내 안에 끓어 넘치는 생각과 열정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공명정대 하고 평상심이 있으며 중용의 선에서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세상에 공명정대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있는가?
세상에 공명정대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매한 이상으로 포장하고,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게 행동하는 편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쉽게 표출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가면을 벗기려면 그들을 화나게 하면 된다고 한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비위를 건드리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런 것을 해보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말하는 것인데...
또 누가 말하길, 중용이란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 위안이라고 한다. 평상심이란 용기없는 사람의 변명이라고 한다. 공명정대한 사람도 없고, 중용이나 평상심을 가졌다는 사람도 다 진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닌 나는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도 아니고 용기없는 사람도 아니니 이제 내 이 혼돈은 무엇에 기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헤맨 것과 진배없는 착각에 빠져 있었으니 남은 날들을 어찌 살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야말로 이제부터라도 중용의 삶을, 평상심의 삶을 살아보려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지...그리하여 세상에 공명정대함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눈이 멀어 있었다.
덧없다, 인생이여...나는 내가 아니고, 그도 그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논 할 수도,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침묵이 그중 나은 선택이리라. (2008/03/18 19:57)
wetware
wet·ware〔〕 n. (소프트웨어를 생각해 내는) 인간의 두뇌;《미·속어》 컴퓨터 인간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하드웨어를 조작하는》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분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wetware의 영역이다.
젖어있는 부분, 인간의 두뇌, 또다른 의미로 감성을 말한다.
이분법으로 형성된 낡고 뒤쳐진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사회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자신과도 점점 소통하기 어려워진다.자신을 둘러싼 현상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이 사회, 이 지구에서 남들은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행성이나, 크리스탈로 뒤덮인 별을 발견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고 그런 일들을 매일 새롭게 접하는 것이다.
지구를 한바퀴 돈다는 의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혹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껏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는 동안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라.이제 북쪽에서 남쪽으로 혹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한바퀴 도는 사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보라.
지금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자신의 웻웨어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지구, 이 경이로운 행성에서 살고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돈다면 자신이 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2008/03/03 23:15)